
샤르코마리투스병, 이름은 낯설지만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유전성 신경질환 이야기
처음 진단명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게 무슨 병인가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샤르코마리투스병(Charcot-Marie-Tooth disease, CMT)은 이름부터 낯설다.
주변에서 쉽게 들어본 적도 없고,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질환도 아니다.
하지만 이 병은 결코 드물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유전성 말초신경병증이 바로 샤르코마리투스병이다.
문제는 ‘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왜 자주 발목을 접질리는지, 왜 다리가 가늘어지는지, 왜 손힘이 약해지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이 글에서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증상과 진행, 치료, 그리고 이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까지 차분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이란 무엇인가
샤르코마리투스병은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유전성 신경질환이다.
말초신경은 뇌와 척수에서 나와 팔과 다리, 손과 발로 이어지는 신경을 말한다.
우리가 걷고, 잡고, 느끼는 모든 감각과 움직임은 이 말초신경을 통해 전달된다.
이 신경이 손상되면 근육에 제대로 신호가 전달되지 않고, 감각 정보도 둔해진다.
그 결과 근력이 약해지고, 근육이 점점 위축되며, 감각 이상이 나타난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바로 이 과정이 천천히,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병이다.
이 병의 이름은 처음 이 질환을 보고한 세 명의 의사 이름에서 따왔다.
이름이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환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CMT’라고 불린다.
왜 생기는 병일까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유전 질환이다.
즉, 특정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유전자 이상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수도 있고, 가족력 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유전자 이상이 말초신경의 구조나 기능에 영향을 주면서 신경이 제대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 과정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지만,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부분 청소년기나 성인 초기, 혹은 그보다 더 늦은 시기에 서서히 증상이 드러난다.
중요한 점은, 같은 샤르코마리투스병이라도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와 진행 속도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누군가는 가볍게, 누군가는 더 뚜렷하게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의 가장 흔한 초기 신호
이 병은 처음부터 “큰 이상”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 자주 발목을 접질린다
- 평지에서도 잘 넘어진다
- 오래 걷기 힘들다
- 발이 자주 피곤하고 무겁다
이런 증상들은 대부분 성장통, 운동 부족, 단순한 체력 문제로 오해되기 쉽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좀 서툰 아이”, “운동을 못하는 아이”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분명해진다.
점점 드러나는 특징적인 증상들
1. 발과 다리의 변화
샤르코마리투스병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발부터 약해진다는 점이다.
발목을 들어 올리는 근육이 약해지면서 발을 질질 끌게 되고, 걸을 때 발끝이 잘 걸린다.
발바닥의 아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요족, 발가락이 갈퀴처럼 굽어지는 변형도 흔히 나타난다.
종아리 근육이 가늘어져 흔히 ‘학다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2. 손의 변화
병이 진행되면 손에도 영향을 미친다.
손가락 힘이 약해져 단추를 채우거나 작은 물건을 집는 동작이 어려워진다.
글씨가 서툴러지고, 오래 손을 쓰면 쉽게 피로해진다.
3. 감각 이상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온도 변화에 둔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발에 상처가 생겨도 늦게 알아차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의미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다.
하지만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반드시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병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몸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오늘은 괜찮지만, 몇 년 뒤에는 또 다른 불편함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자에게는 신체적인 적응뿐 아니라 심리적인 적응도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진단할까
샤르코마리투스병은 한 가지 검사로 바로 진단되는 병은 아니다. 보통 다음 과정을 거친다.
- 신경학적 진찰
- 신경전도 검사
- 근전도 검사
- 유전자 검사
특히 유전자 검사는 병의 유형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서 유전자 이상이 명확히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단은 검사 결과뿐 아니라 임상 증상을 종합해 판단한다.
치료는 가능한가
현재로서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완전히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1. 재활 치료
물리치료와 운동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근육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사용하는 것은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된다.
2. 보조기와 교정
발목 보조기, 맞춤 신발, 깔창 등은 보행 안정성을 크게 높여준다. 넘어짐을 줄이고 일상생활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통증 관리
신경통이나 근육 통증이 있는 경우, 증상에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
운동을 해야 할까, 쉬어야 할까
많은 환자들이 이 부분에서 고민한다. “운동하면 더 나빠지지 않을까?”라는 걱정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운동은 도움이 된다.
걷기, 수영, 스트레칭처럼 관절에 부담이 적은 운동은 근육 기능 유지와 균형 감각 향상에 긍정적이다.
중요한 것은 경쟁이나 기록이 아니라, 내 몸 상태에 맞춘 꾸준함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과 일상생활
이 병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애를 만든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주변의 이해를 받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 “왜 그렇게 천천히 걸어?”
- “조심하면 안 넘어질 수 있잖아”
이런 말들은 환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 전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주변 사람이 알아야 할 점
가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과도한 걱정이나 통제보다는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 환자의 속도를 존중하기
-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맡기기
- 피로 신호를 놓치지 않기
- 감정적인 지지 제공하기
샤르코마리투스병은 혼자서 견디기에는 긴 여정의 병이다.
유전 질환이라는 사실이 주는 부담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면 어떡하지?”
이 질문은 많은 환자들이 혼자서 반복하는 고민이다.
유전 질환이라는 특성상, 죄책감과 두려움이 함께 따라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혼자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유전 상담을 통해 정보를 정확히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막연한 불안보다 훨씬 건강한 선택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이 병은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함께 조율해 나가는 존재’에 가깝다.
몸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된다.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삶의 속도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이름처럼 낯설고,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 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병을 가진 사람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불편함을 겪고,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 알고, 천천히 적응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샤르코마리투스병을 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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