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밤을 데우는 향긋한 와인 한 잔, 뱅쇼 이야기
겨울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두툼한 외투, 길게 늘어나는 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 요리, 그리고 조용한 밤을 채워주는 따뜻한 음료 한 잔.
커피나 차도 좋지만, 겨울의 분위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료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뱅쇼를 떠올린다.
뱅쇼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을 뜻한다.
단어 그대로 레드와인에 과일과 향신료를 넣고 은근하게 끓여 만든 음료다.
알코올이 들어 있지만 독하지 않고, 오히려 과일과 향신료 덕분에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먼저 다가온다.
처음 뱅쇼를 접한 사람이라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유다.
뱅쇼의 시작, 그리고 유럽의 겨울
뱅쇼의 기원은 정확히 한 나라로 한정하기 어렵다.
프랑스에서 ‘뱅쇼’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독일에서는 글뤼바인(Glühwein), 북유럽에서는 글뢰그(Glogg)라는 비슷한 음료가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
이름은 달라도 기본적인 개념은 같다.
추운 겨울, 와인을 그대로 마시기에는 차갑고 부담스러울 때 향신료와 과일을 넣어 데워 마시던 생활의 지혜였다.
난방 시설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겨울은 몸을 보호하는 것 자체가 큰 과제였다.
알코올은 체온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고, 계피나 정향 같은 향신료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말린 과일이나 사과, 오렌지 같은 과일을 넣어 맛과 영양을 보완했다. 그렇게 뱅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겨울을 버티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마켓과 뱅쇼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겨울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김이 오르는 컵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 컵 속에 담긴 것이 바로 뱅쇼, 혹은 글뤼바인이다.
작은 나무 부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달콤한 향신료 향, 손을 녹이며 마시는 따뜻한 와인. 뱅쇼는 그 풍경의 중심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뱅쇼라도 지역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꿀을 넣어 부드럽게 만들고, 어떤 곳은 럼이나 브랜디를 살짝 더해 향을 깊게 만든다.
북유럽 쪽으로 갈수록 향신료의 존재감이 강해지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과일 향이 두드러진다.
이런 차이 덕분에 뱅쇼는 ‘정해진 레시피’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음료에 가깝다.
집에서 만드는 뱅쇼의 매력
뱅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한 장비나 고급 재료가 없어도 된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레드와인 한 병, 오렌지나 사과 같은 과일, 계피 스틱이나 정향 정도면 충분하다.
와인은 비싼 것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볍고 과일 향이 있는 데일리 와인이 잘 어울린다.
당도가 너무 낮은 와인은 설탕이나 꿀로 조절할 수 있고, 너무 떫다면 과일을 조금 더 넣어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뱅쇼는 실패하기 어려운 음료다. 약간 달라도 ‘이 집 스타일’이 되는 것이 장점이다.
냄비에 와인을 붓고, 슬라이스한 오렌지와 사과를 넣는다.
계피 스틱 한두 개, 정향 몇 알을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데운다.
중요한 건 끓이지 않는 것이다. 알코올이 너무 날아가면 풍미가 사라지고, 쓴맛이 올라올 수 있다.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향이 퍼지는 순간을 즐기면 된다.
향신료가 만드는 깊이
뱅쇼의 매력은 와인보다도 향신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피는 뱅쇼의 중심이다.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향이 와인과 잘 어울린다.
정향은 소량만 넣어도 존재감이 강하다.
너무 많이 넣으면 약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 조절이 중요하다.
스타 아니스(팔각)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소량을 넣으면 이국적인 향을 더해준다.
생강을 얇게 썰어 넣으면 몸이 더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닐라 빈을 살짝 넣는 사람도 있고, 후추를 한두 알 넣어 은근한 매운맛을 더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향신료는 선택 사항이다.
꼭 다 넣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몇 가지로 단순하게 구성했을 때 와인과 과일의 맛이 더 잘 살아나기도 한다.
알코올이 부담스러울 때
뱅쇼는 술이지만, 알코올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와인을 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고, 여기에 과일과 향신료가 더해지면서 술의 느낌이 많이 옅어진다.
완전히 무알코올로 만들고 싶다면, 와인 대신 포도주스나 석류주스를 사용해도 된다.
향신료와 과일을 넣는 방식은 같고, 결과물은 뱅쇼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특히 아이들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함께할 때 좋은 대안이 된다.
혼자 마시는 뱅쇼, 함께 마시는 뱅쇼
뱅쇼는 혼자 마셔도 좋고, 여럿이 함께 마셔도 좋다.
조용한 밤, 조명을 낮추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뱅쇼는 하루를 정리하는 느낌을 준다.
와인잔이 아니라 머그컵에 담아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 편안함이 뱅쇼의 매력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람들과 함께할 때 뱅쇼는 분위기를 빠르게 부드럽게 만든다.
술자리 특유의 부담이 적고, 따뜻한 온도 덕분에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모임에 뱅쇼 한 냄비만 있어도 테이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뱅쇼가 주는 계절감
뱅쇼는 사계절 내내 마시는 음료는 아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생각나고,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이 계절성이 뱅쇼를 기억에 남게 만든다.
겨울의 냄새를 떠올리면 눈, 찬 공기, 그리고 어딘가에서 퍼져오는 계피 향이 함께 떠오른다.
그 향의 중심에 뱅쇼가 있다. 단순히 맛있는 음료를 넘어, 계절의 감정을 담고 있는 존재라고 느껴진다.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뱅쇼
뱅쇼에는 정답이 없다. 달게 마셔도 되고, 향신료를 과하게 넣어도 된다. 레몬을 넣어 상큼하게 만들어도 좋고, 꿀 대신 흑설탕을 사용해 깊은 단맛을 내도 좋다.
중요한 건 ‘내가 마시고 싶은 맛’이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레시피로 시작하고,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바꿔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날은 계피를 줄이고 오렌지를 늘리고, 어떤 날은 생강을 더 넣어보는 식이다.
그렇게 몇 번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뱅쇼가 완성된다.
겨울을 기억하는 방법
사람마다 겨울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또 누군가는 음식으로 기억한다.
나에게 뱅쇼는 겨울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한 잔의 따뜻한 와인에 담긴 향과 온도, 그 순간의 공기까지 함께 남는다.
올겨울, 특별한 계획이 없더라도 괜찮다.
마트에서 와인 한 병을 들고 와서 천천히 뱅쇼를 만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겨울다운 밤이 된다.
복잡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따뜻하면 된다.
뱅쇼는 그렇게 겨울을 천천히 마시게 해주는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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